20190214
KPC. 유현
PC. 송미노
[수몰버스]
-
-
덜컹.
몸이 얕게 흔들리는 감각과 함께 불현듯 꺼져있던 정신이 맞붙습니다.
아무래도 버스 안에서 깜빡 잠들어버렸던 모양이에요.
눈을 뜨면 들어오는 풍경은 익숙하고도 평범한 버스의 내부.
흔들리는 손잡이, 끊임없이 스쳐 지나가는 차창 너머의 풍경,
조금 낡은 감이 있는 앞 좌석의 시트….
익숙한 것들 투성이인 차체의 내부에서 익숙하지 않은 점이라고는 버스가 텅 비어있다는 점 뿐입니다.
그야말로 '나 자신'을 제외한 탑승객이 존재하지 않습니다만, 왜일까요.
별로 대수롭지는 않습니다.
적적한 버스를 오로지 시선만으로 훑고 있었을 때였나요.
문득 좌석의 맞은 편 정면에 붙어있는 버스 번호 라벨이 눈에 들어옵니다.
: 《관찰》 판정

Value: | 85/42/17 |
Rolled: | 2 |
Result: | Extreme |
0807번.
이 버스는 아무래도 종점까지 우회해서 가는 번호의 버스인 것 같습니다.
그러니 탑승객이 없을 법도 하지요. 불안할 것도 없습니다.
...
그래서, 어디쯤 왔지?
그 전에 목적지가 어디였더라….
몽롱한 정신을 가다듬다보면,
문득 기대고 있던 차창 너머로 시선이 돌아갑니다.
흔들리는 창문 너머로 어느새 장대비가 쏟아져 내리고 있습니다.
꼭, 세상을 수몰시킬 것처럼.
이 비는 언제부터 내리기 시작한 걸까요?
잠들기 전까지만해도 날씨가 제법 맑았던 것 같은데…
: 《아이디어》 판정

Value: | 50/25/10 |
Rolled: | 16 |
Result: | Hard |
…잠들기 전까지만 해도?
글쎄요, 정말 잠들기 전까지만해도 날씨가 맑았던가요?
미노는 문득 부자연스러운 위화감에 사로잡힙니다.
그야 잠들기 전의 기억이 존재하지 않으니까요.
언제 이 버스에 올라타 있었는지조차 떠오르지 않습니다.
마치 검은 도화지 위에 먹칠을 한 듯,
머릿속엔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뿌옇고 흐릿한 기억만이 잔존합니다.
: 《이성》 체크

Value: | 60/30/12 |
Rolled: | 61 |
Result: | Fail |
: 이성 수치 -1
덜컹.
어지러운 머리를 갈무리 하기도 전에,
방지턱 탓인지 버스가 또 한 번 크게 흔들립니다.
그 불친절한 진동과 함께 품에 안고있던 무언가가 바닥으로 떨어집니다.

뭐, 뭐지..(떨어진 것을 살펴본다.)
미노는 버스 바닥을 나뒹구는 국화꽃다발을 발견합니다.
품에 안고 있던 무언가는 아무래도 국화꽃다발이었던 것 같습니다.
바닥에 떨어져 나뒹군 충격 탓이었을까요?
순백색의 꽃잎 몇송이가 바닥에 흐드러진 것이 보입니다.

(국화꽃을 주워든다.)
: 《듣기》 판정

Value: | 70/35/14 |
Rolled: | 100 |
Result: | Fumble |
바닥에 나뒹구는 꽃다발을 주워들던 그 순간,
단말마와 같은 이명이 짧막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갑니다.
...
...방금 무슨 소리를 들었죠?
어쩐지 머리가 아파옵니다.
아, 그제야 흐릿한 의식 너머로 떠오르는 기억이 하나.
그렇지. 오늘은 사랑하는 현의 첫 번째 기일이었죠.
미노는 현이 잠들어있는 납골당으로 향하는 길이었을 겁니다.
아무리 피곤해도 그렇지, 이런 중요한 사실을 잊고 있었다니.
거기까지 떠올리면... 문득 버스는 인적이 드문 정류장에 정차합니다.
탑승구가 열리고, 올라타는 승객의 모습에
미노는 스스로의 눈을 의심하게 됩니다.
그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야 버스 위에 올라탄 사람은,
…1년 전 죽었던 현이였으니까요.

고즈넉한 빗소리가 귀를 먹먹히 울리는 텅 빈 버스 안,
죽었던 현과 조우하게 된 당신.
혹시 꿈이라도 꾸고 있는 걸까요?
: 《이성》 체크

Value: | 59/29/11 |
Rolled: | 90 |
Result: | Fail |
: 이성 수치 -1d3

rolling 1d3
()
1
1
...
맞붙고, 멎습니다.
맞붙는 것은 허공 위로 겹쳐진 두 사람의 시선.
일순 멎는 것은 미노의 호흡.
그뿐입니다. 미노는 알고 있습니다.
내가 살고 있는 현실은 때로 꿈보다 비현실적이라는 사실을요.
그렇기에 지금껏 비현실적인 현실을 여러 차례 맞이해가며
이토록 불친절하고 잔인한 삶을 살아오지 않았던가요.
비현실적인 현실이요.
현은 분명 1년 전에 죽었습니다.
오늘처럼 비가 내리던 날, 돌이킬 수 없는 사고에 휘말려서요.
그래요. 나는 그 사람이 죽음을 맞이하던 순간 곁에 있어주지 못했고,
그렇기에 그의 부재를 부정했던 기억을 떠올립니다.
그러니 내 앞에 서있는 저 사람은,
현이 아닌 그를 지나치게 닮은 사람일 겁니다.
꿈보다 비현실적인 현실의 나날 속에서도
실현될 수 없는 비현실이 있는 법입니다.
죽었던 사람이 다시 살아돌아올 수는 없잖아요.
혼란 속에 빠져있는 당신의 상태를 눈치챈 걸까요.
막 버스에 올라탄 현을 닮은 이는,
미노의 생각을 부정하듯, 옅은 미소를 지으며
당신이 앉아있는 좌석 옆에 앉습니다.




..
오랜만이야..
(꾹, 마른침을 삼키다 손을 뻗어본다.)

많이 보고싶었어.

나도..많이 보고싶었어..
아, 저 웃는 얼굴. 저 목소리.
나를 바라보는 다정한 두 눈동자.
아무리 부정하고 잊으려 애를 써도 잊히지 않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리웠고, 그리웠기에 ...
나날이 새로운 처절함과 아픔을 느끼게 했었던 저 두 눈처럼요.
정차했던 버스는 오로지 두 사람만을 태운 채,
다시금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미노는 받아들이고 맙니다.
현을 닮은 이는, 그저 닮은 사람일 뿐이 아닌 현, 그 자체라는 사실을요.
당황했나요? 아니면 반가운가요? 혹은, 슬픈가요.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의 덩어리가 가슴속에 응어리로 자리잡습니다.
무슨 말을 꺼내야할지 갈피조차 잡히지 않습니다.
막연히 다짐했던 것들이 있습니다.
혹여나 꿈에서라도 너를 다시 한 번 만날 수 있게 된다면,
품에 끌어안고 못다했던 말들을 쉴새없이 토해낼 것이리라고.
그런 다짐을 했었는데.
...
현은 여전히 혼란스러워하는 당신과 눈을 마주합니다.


(꿈뻑, 시선이 떨어졌다 다시 얼굴을 향한다.)여기서 보게 될줄은 몰랐는데...

미노의 답변을 들은 현은,
그저… 군더더기 없는 애정과 슬픔이 가득 담긴 눈으로 당신을 바라볼 뿐입니다.
덜컹.
다시 한 번 방지턱을 밟고 지나간 버스가 얕게 흔들립니다.
: 《관찰》 판정

Value: | 85/42/17 |
Rolled: | 35 |
Result: | Hard |
얕은 진동 탓에 시야가 갈라짐과 동시에,
문득 운전석 쪽으로 시선이 꽂힙니다.
…이상합니다.
운전석에서 운전대를 잡고 있어야 할 버스 기사가 보이지 않습니다.
이 버스는 그저 운전사도 없이 홀로 비가 내리는 도로를 내달리고 있습니다.
: 《이성》 체크

Value: | 58/29/11 |
Rolled: | 84 |
Result: | Fail |
: 이성 수치 -1
현쪽을 돌아보면, 그는 일절 놀란 기색이 없습니다.
오히려 평온해보이는 얼굴입니다.


현이 넌..분명..(차마 죽었다는 말을 입밖에 내기가 어렵다.)

응, 나는.. 이미 죽은 사람이니까. 힘들면 얘기하지 않아도 돼.
널 만나고 싶어서. 네 꿈속으로 들어왔어.
네가 가기로 했던 곳까지 길을 잃지 않도록.. 내가 같이 갈게.
..그래도 될까?

응..같이 있어줘.


..여기 버스는 정확히 어디로 가는거야..?기억이 안나네..

몇 번 갈아타야 할 거야. 멀지는 않지만... 그때까지는 계속 같이 있자.

그래, 같이있자. ..그때까지만?(흘긋, 얼굴을 바라본다.)

쭉, 함께 있고 싶지만.. 그건 내 욕심이겠지.

...(꾹, 잡은 손을 끌어당긴다.)..여전히 좋아해..

외롭게 해서, 혼자 둬서 미안했어. (조심조심 깍지를 껴 손가락을 얽어본다.)

아직도 아침에 일어나면 네 품에 있을것같아. ..어떡하지?



..아, 이제 슬슬 내리자. 이번 정류장에서 갈아타야 돼.


현이 벨을 누른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버스는 서서히 속도를 줄이며 곧 첫번째 정류장에 정차합니다.
...
버스에서 내린 두 사람은 협소한 간이정류장 지붕 아래로 들어섭니다.
빗줄기는 여전히 이 세상을 침수시킬 것만 같이 맹렬합니다.
투명한 플라스틱으로 처리된 정류장 지붕 아래,
양 옆으로 담장 형식의 벽면이 기둥처럼 세워져있고
그 중앙에 원목으로 만들어진 나무 벤치가 하나 놓여있습니다.
버스 그림이 새겨진 표지판 또한 눈에 띕니다.
쭉 눈으로 훑어보니.. 벽면과 벤치, 표지판 정도를 살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마치 담장을 연장시키는 정류장의 벽면에는
흰색 장미 무더기가 덩굴을 내리고 자리합니다.

미노는 덩굴을 좀 더 유심히 살펴봅니다.
장미 무더기, 그 아래 피어있는 것은… 흰 색의 국화.
미노가 들고 있는 것과 같은 흰 색 국화 꽃입니다.
흙 속에 뿌리를 내린채 한들한들 흔들리는 국화꽃은
물기를 머금은 탓에 아주 생생합니다.

(국화꽃을 꺾어든다.)
미노는 국화 몇송이를 꺾어 듭니다.
꽃잎이 몇 장 떨어진 국화와 함께 섞어두고 있을 때,
쏟아져 내리는 빗소리를 가르고 현이 말을 걸어옵니다.


빗줄기에 파묻힌 탓이었을까요.
그렇게 속삭이는 현의 목소리는 어쩐지 막연하고도 얕습니다.



국화 꽃의 색에 따라... 꽃말이 조금씩 다르다는 것도 알고 있어?

글쎄요, 국화꽃의 색상에 따라 꽃말이 상이하던가요?
처음 알게된 사실인걸요.
답을 하지 못하는 미노를 향해 현은 얕게 미소짓습니다.





버스가 올 때 까지는 시간이 남았다고 하니,
그 동안 다른 곳도 마저 살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간략한 버스 그림이 새겨진 정류장 표지판입니다.
표지판 아래 버스 노선도가 붙어있습니다.
노선도를 자세히 확인해보니…
이건 그냥 평범한 노선도가 아니네요.
아니, 이를 노선도라고 칭해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버스 노선을 알리는 안내판에는,
노선도 대신 '색상에 따른 국화꽃의 꽃말'에 관한 내용이 적혀있습니다.

[색상에 따른 국화꽃의 꽃말]
흰색: 감사함, 진실함, 성실함
분홍색: 정조
노란색: 순정
보라색: 내 모든 것을 그대에게
....색: 당신을... 합니다.
맨 아래 적혀있는 국화꽃의 색상과,
색상별 의미는 칠이 벗겨져있어 읽을 수 없습니다.
: 《관찰》 or 《아이디어》 or 《자료조사》 판정

Value: | 85/42/17 |
Rolled: | 100 |
Result: | Fumble |
빗물소리에 시야마저 먹먹해진듯,
그 외에 다른 것은 알아볼 수 없습니다.
: 《관찰》 판정

Value: | 85/42/17 |
Rolled: | 56 |
Result: | Success |
미노는 벽면 상단에 고정되어있는 버스도착 안내 전광판을 발견합니다.

여느 버스 정류장에서도 볼 수 있을 법한 평범한 전광판입니다.
전광판에는 글자가 흐르고 있지만,
약한 노이즈가 끼어있는 탓에 글자를 제대로 확인할 수 없습니다.

미세한 노이즈 사이로 간간히 글자가 눈에 들어옵니다.
자세히 읽어볼까요?

글자가 깨진 안내 메시지를 읽어봅니다.
전광판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의 이름을 호명할 때, 다음 버스가 도착합니다.
: 《아이디어》 판정

Value: | 50/25/10 |
Rolled: | 42 |
Result: | Success |
미노는 막연히 떠올립니다.
'현의 이름을 불러야 다음 버스가 도착하는 게 아닐까?' 하는 실없는 생각을요.

저, 현아..?(흘긋 얼굴을 돌아본다.)

왜, 였을까요.
나지막이 당신의 이름을 마주 부르는 현의 목소리는 어딘가 한구석,
차게 식은 빗물에 젖어 번지는 것만 같습니다.
당장이라도 물에 녹아 사라질 것만 같아요.
송미노, 당신은 당신을 바라보는…
한없이 가라앉은 것만 같은 현의 두 눈동자에서 무엇을 읽어냈나요.
: 《심리학》 판정

Value: | 25/12/5 |
Rolled: | 24 |
Result: | Success |
미노는 현이 커다란 슬픔을 느끼고 있음을 깨닫습니다.
처절히 느껴집니다.
손을 뻗어도 잡히지 않을 것 같고,
손에 잡았다고 한들 감히 위로할 수 없을 것만 같은 애절함입니다.
아주아주 방대한, 온 삶을 통틀어 몇 번 느껴본 적 없는.
미칠듯하고도 강렬한 억겁의 슬픔이 빗소리에 잠식되어갑니다.
...
무어라고 말을 건네기도 전에 장대비의 포화를 가르고 라이트가 번쩍입니다.
곧 버스 한 대가 정류장 앞에 정차합니다.
버스의 전면 유리창에 붙어있는 라벨에는 '1111번'이라는 숫자가 적혀 있습니다.
굳게 닫혀 있던 문이 서서히 열리고, 현이 먼저 몸을 일으킵니다.


손을 꼭 잡은 채, 두사람은 버스에 올라탑니다.
: 《듣기》 판정

Value: | 70/35/14 |
Rolled: | 57 |
Result: | Success |
삐―.
아까 전 들었던, 단말마와 같은 이명이 귓가를 울리고 사라집니다.
...
두 사람이 올라타는 것과 동시에
버스는 천천히 빗길속을 뚫고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이번 버스도 첫 번째 버스와 마찬가지로 텅 비어있습니다.
이 안에 존재하는 탑승객은 오로지 미노와 현, 두 사람 뿐입니다.
운전석을 살피면 첫번째 버스와 마찬가지로 기사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버스는 그저 운전 기사 없이 홀로 굴러갈 뿐입니다.
두 사람은 의자 두 개가 붙어있는 2인용 좌석에 착석합니다.
: 《관찰》 판정

Value: | 85/42/17 |
Rolled: | 59 |
Result: | Success |
미노는 새로이 꺾어 들었던 일이 무색하게,
품에 안고 있던 국화가 일전보다 생기를 잃었음 눈치챕니다.
마냥 하얗던 꽃잎 끝이 짓밟힌듯 옅게 시들어있습니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
모처럼 만났는데. 얘기도 많이 못하는 것 같아서...

그전처럼 지내려고 하고 있어. 아르바이트도 다니고..여전히 자취도 하고.. 아, 포포도 다시 데려왔어.
..너는..(말끝을 점차 흐린다.)
그냥..많이 보고싶었어.(시선이 힘없이 떨어진다.)

.... (흐려지는 말끝과 바닥으로 떨어지는 시선에 입을 잠시 꾹 다물다가 천천히 잡은 손을 끌어와 손등에 가볍게 입을 맞춘다.)
..힘들었을 텐데, 잊고 싶지는 않았어?


...괜찮아. 괜찮아질거야. 억지로 기억해달라는 말 하지 않으니까.. 힘들면 잊어도 괜찮아. (고개를 숙이며 중얼거리다 곧 입을 다문다.)


…
문득 한 가지 기억이 떠오릅니다.
날짜를 특정할 수 없는 그 언젠가의 평범하고 행복했던 기억.
당신의 옆에는 사랑해 마지않는 현이 자리하고,
우리는 조용하고도 한적한 버스에 앉아 함께 어디론가 향하고 있었습니다.
상기해낸 평화로움도 잠시,
미노는 갑작스러운 서늘함을 느끼게 됩니다.
글쎄, '서늘함'이라는 말로 형용할 수 있을까요.
두려움, 공포, 슬픔, 당황스러움.
모든 불안정한 감정이 한데 뭉쳐 숨통을 억세게 짓누르던 그 때.
빗길에 미끄러진 버스가 요동치듯 크게 흔들립니다.
무언가에 머리를 강하게 맞는 충격과 함께
일순 힘이 빠져나간 몸이 앞으로 쓰러집니다.
와락.
고꾸라지는 몸을 지탱하듯 누군가 나를 강한 힘으로 끌어안습니다.
아니, '누군가'라고 특정지을 필요도 없잖아요.
그야 지금 당신의 곁에 존재하는 사람은 현뿐인걸요.
현입니다. 현이 억센 힘으로 미노를 끌어안았습니다.
... 어째서?
그런 의문을 던지기도 전,
쾅―!!
반대편 차선을 지나치던 트럭과 버스가 갑작스레 충돌합니다.
직후 들려오는 것은 커다란 굉음.
쇠가 굽어들고 절단되는 듯한 소름끼치는 금속음.
무언가 터지는 소리, 날아가는 소리, 어딘가에 들이박는듯한 충격.
온 몸의 뼈가 부러지고, 근육이 찢겨져 나가는 듯한 생생한 통증.
품에 안고 있던 국화꽃다발이 바닥을 나뒹굴고,
마치 눈송이같은 국화꽃잎은 시야를 긋고 흐드러집니다.
나를 꽉 끌어안은 현의 체온은 어쩐지 전혀, 따듯하지가 않아서.
그게 또 어쩐지 너무나도 슬퍼서…
…
괜찮느냐고 물어봐야 하는데, 이대로 정신을 잃으면 안 되는데.
현의 상태를 확인하기도 전에 시야가 수몰됩니다.
칠흑같은 어둠이 눈 앞에 쏟아집니다.
왜인지 생경하지 않은 순간입니다.
: 《듣기》 판정

Value: | 70/35/14 |
Rolled: | 6 |
Result: | Extreme |
삐―.
의식과 함께 낙하하는 머릿속에 이명이 들려옵니다.
그러나 이제와서 그런 이명따위는 아무래도 상관 없습니다.
어지러운 의식을 잠재우듯 귓가에 익숙하고도 다정한 목소리가 섞여들던 탓입니다.
"괜찮아." …하고.
...
...깜빡.
미노는 눈을 뜹니다.
제일 먼저 들려오는 것은 무겁게 낙수하는 물방울 소리.
그리고,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품 안에 안겨있는 백색의 국화꽃다발입니다.
꽃다발은 아까 전 보았을 때보다 조금 더 시들어있습니다.
이렇게 시들면 안 될텐데.
어쩐지 막연한 슬픔이 느껴집니다.
그야 오늘을 위해 준비한 꽃다발인걸요.


(시들면 안되는데..꽃다발을 안은 팔에 힘이 들어간다.)
꼭 빗물에 익사할 것만 같이 무겁던 정신을 흔드는 것은
잔잔하고도 담담한 현의 목소리.
이곳은 버스 정류장인 것 같습니다.
꼭 이 세상과 동떨어진 것만 같이,
끊임없이 펼쳐진 도로 한가운데 마련된 간이 정류장이요.
어느 틈에 하차한 걸까요.
두 사람은 벤치에 앉아있습니다.
현에게 기댄 채 잠들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까 전의 사고는 역시 꿈이었던 걸까요?
그렇지 않고서는 이렇게 멀쩡할 수가 없을테니,
아무래도 질 나쁜 꿈이라도 꾼 모양입니다.


그보다..언제 내린거지..(웅얼거리며 연신 시선이 여기저기를 훑는다.)
그렇게 읊조리는 현의 목소리는 어딘지 모르게 지쳐있는 것만 같다는…
이유 모를 감상이 듭니다.
: 《관찰》 판정

Value: | 85/42/17 |
Rolled: | 18 |
Result: | Hard |
첫번째 정류장과 마찬가지로,
벽면 상단에 고정되어있는 버스 도착 안내 전광판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여느 버스 정류장에서도 볼 수 있을 법한 평범한 전광판입니다.
전광판에는 글자가 흐르고 있습니다.
노이즈가 끼어있는 탓에 글자를 제대로 확인할 수 없습니다만,
첫번째 정류장에서 보았던 전광판에 비해 노이즈가 덜합니다.

미노는 글자가 깨진 안내 메시지를 읽을 수 있습니다.
전광판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인도자... ...의 이름을 호명할 때, 다음 버스가 도착합니다.
미노는 첫번째 정류장에서 현의 이름을 호명한 직후 버스가 도착했던 것을 떠올립니다.
두 번째 정류장에서도 현의 이름을 불러야 버스가 도착하는 게 아닐까요?
: 《아이디어》 판정

Value: | 50/25/10 |
Rolled: | 81 |
Result: | Fail |
버스 사고의 충격 탓이었을까.
어쩐지 께름칙한 기분이 듭니다.




무겁게 허공을 가르는 현의 목소리는,
어째서 이만큼이나 빗물에 수몰될 듯 참담히 젖어있는지.
현이 미노의 이름을 호명하고 얼마 있지 않아,
세 번째 버스가 저 멀리서 빗속을 헤치고 다가와 정차합니다.
버스는 지금까지 승차했던 버스와 달리 커다란 2층 버스입니다.
아, 실은 누가 부르든 상관 없었던 걸까요.
내가 너의 이름을 부르든, 네가 나의 이름을 부르든.
달리 상관이 없었던 겁니다.
두 사람 앞에 멈춰선 버스의 탑승구가 입을 벌립니다.
타고싶지 않아요. 타서는 안될 것 같습니다.
이유는 알 수 없습니다.
그저 그래서는 안될 것만 같다는 근원 모를 충동만이 내 안에 가득합니다.





갑자기.. 왜? (미노를 향해 몸을 돌리고 가만히 기다려준다.)


아직 갈길이 조금 더 남았으니까... 너무 걱정하지마.
..괜찮아, 내가 같이 있잖아. 무서워 할 거 없어. ..응?




무슨일 있는거야?
금방이라도 떠나갈 것 같은 버스는,
재촉이라도 하듯 다시 한 번 경적을 울립니다.



타지 않으면, 계속 함께 갈 수 없어...

..알았어..



미노와 현은 손을 꼭 잡은 채, 세 번째 버스에 올라탑니다.
: 《듣기》 판정

Value: | 70/35/14 |
Rolled: | 99 |
Result: | Fail |
어쩐지 흐릿하게 이명을 들었던 것도 같습니다.
빗소리 탓에 명확한 사고가 서지는 않지만요.
...어쩌면 착각일지도 모르겠습니다.
…
두 사람이 올라타는 것과 동시에 버스가 움직입니다.
차창 바깥으로 온통 습기뿐인 세계가 스쳐 지나갑니다.
버스는 지금까지의 버스와 마찬가지로 텅 비어있으며,
기사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 안에 존재하는 탑승객은 그저 미노와 현, 두 사람 뿐입니다.
버스 내부에는 2층으로 올라갈 수 있는 계단이 보이지만, 입구가 닫혀있습니다.
닫혀있는 입구의 문에는 커다란 자물쇠가 걸려있는 것이 보입니다.
: 《관찰》 판정

Value: | 85/42/17 |
Rolled: | 15 |
Result: | Extreme |
미노는 품에 안고 있던 국화가 일전보다 훨씬 더 생기를 잃었음을 눈치챕니다.
갓 생명을 피워낸듯 하얗고 투명하던 꽃잎은,
이제는 그저 계절을 잃은 이름 모를 들꽃처럼 보여요.
단지 몇 송이의 국화만이 처량히 바래진 꽃잎의 색을 발할 뿐입니다.
현은 먼저 창가 좌석에 앉습니다.


(버스가 다르네..)(주변을 둘러봅니다.)
미노는 주변을 둘러보던 중, 좌석 바닥에 떨어져있는 책을 한 권 발견합니다.
책이라기보다는 얇은 책자에 가까워보입니다.
푸른 색의 표지에는 아기자기한 회전목마 그림이 프린트되어 있습니다.
놀이공원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화려하고도 쓸쓸한 푸른 대낮의 회전목마네요.
제목은 'merry go round'
…메리 고 라운드. 회전목마를 지칭하는 단어입니다.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그때였을까요.
미노는 갑작스레 강한 현기증과 함께 정신을 잃습니다.
…
…
빛도 한줄기 들지 않는 맨 밑바닥의 어둠 속에서,
미노는 환각을 마주합니다.
환각 속에 삶에서 가장 기뻤던 순간이, 가장 슬펐던 순간이,
죽어서도 잊지 못하리라 여겼던 반짝이던 삶의 조각과,
어느 순간 내 삶에 끼어들어 뿌리를 내리고 침범한 너,
현과의 첫만남. 첫데이트.
…빼놓을 수 없는 여러 기억들이 스쳐 지나갑니다.
함께 맛있는 것을 먹었던 기억,
처음으로 그 앞에서 눈물을 터뜨렸던 기억,
고조되는 행복감에 웃어버렸던 순간.
한동안 빠른 속도로 영상이 스쳐 지나가고,
잠시간 필름이 뚝 끊기며 말간 어둠이 지속됩니다.
...
주위를 둘러보아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문득, 다시금 빛처럼 터져나오는 영상이 하나.
두 사람의 모습입니다.
…
…
현과 미노, 두 사람은 버스를 타고 함께 어디론가 향하고 있습니다.
차창 바깥으로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행복해보입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한없이 다정하며,
애정이 넘치는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고,
체온이 따스한 손으로 서로의 손을 맞잡고 있습니다.
고즈넉한 빗소리의 향연마저 서로간의 애정에 담뿍 물들어 있습니다.
...
하지만 그 행복도 잠시,
쾅―!!
반대편 차선을 지나치던 트럭과 버스가 갑작스레 충돌합니다.
직후 들려오는 것은 커다란 굉음.
쇠가 굽어들고 절단되는 듯한 소름끼치는 금속음.
무언가 터지는 소리, 날아가는 소리,
어딘가에 들이박는듯한 충격.
온 몸의 뼈가 부러지고, 근육이 찢겨져 나가는 듯한 생생한 통증.
쉼없이 흔들리고 요동치는 어두운 화면 사이로,
그런 미노를 한 점 망설임 없이 끌어안는 누군가가 있었습니다.
당신은 강한 힘으로 끌어안깁니다.
아니, '누군가'라고 특정지을 필요도 없습니다.
당신의 곁에 사시사철 피어나는 국화처럼 존재하던 사람은 누구인가요.
늘 미노를 위해 스스로를 아끼지 않았으며,
온 생애를 다해 열렬히 사랑해주었던 사람은 누구인가요.
그야… 현이 아닙니까. 현입니다.
현이 억센 힘으로 송미노, 당신을 끌어안았습니다.
암전하는 버스의 내부를 어둡게 띄우며 필름이 또 한 차례 뚝 끊겨나갑니다.
떠오르는 영상의 날짜는…
1년 전의 오늘입니다.
아, 그제야 지금까지 서리가 내린듯 희뿌옅기만 하던 기억 하나가
마치 퍼즐조각처럼 맞달라 붙습니다.
…
1년 전의 사고가 떠오릅니다.
1년 전, 돌이킬 수 없는 사고의 현장에 존재하던 것은 현만이 아니었습니다.
현과 미노, 두 사람이 함께 있었습니다.
'나'를 제외한 탑승객 전원이 사망했던 그 참담한 사고의 현장에서,
현은 미노를 끌어안고 죽었습니다.
오로지 나를 살리기 위해… 스스로를 희생시켜서요.
이건… 주마등인가요?
그래요. 이건 주마등입니다.
: 《이성》 체크

Value: | 57/28/11 |
Rolled: | 48 |
Result: | Success |
: 이성 수치 -1d2

rolling 1d2
()
2
2
일순 강한 충격과 함께 주마등이 돌아가던 공간이 산산이 부숴져내립니다.
...
: 《듣기》 판정

Value: | 70/35/14 |
Rolled: | 1 |
Result: | Critical |
삐―――.
무너져 내리는 공간 속에서, 조금은.
길게 이어지는 기계음을 들었던 것도 같습니다.
꼭 말단부위부터 심장까지 강한 전기가 흘렀다 사라지는 것만 같은 감각.
이윽고 수몰됩니다.
그 조각들과, 끊임없이 퍼붓는 빗소리에 한데 뒤엉켜있던 환각들이 수몰됩니다.
...
...
귀를 먹먹히 침수시키는 낙수음.
당신은 흔들리는 버스 좌석에 앉은 채 눈을 떠올립니다.
기억 났습니다. 떠올렸습니다.
1년 전의 그 날, 현은 나를 끌어안고 대신 죽었던 겁니다.
고개를 돌리면 현은 창가에 머리를 기댄채 곤히 잠들어있습니다.

(주변을 둘러본다.)
발 끝에 무언가, 짤그랑.
바닥으로 떨어지는 미약한 금속음이 들려옵니다.

회전목마 키링이 달려있는 작은 열쇠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혹시..(2층의 잠긴 좌물쇠에 갖다대본다.)
자물쇠에 방금 전 얻었던 열쇠를 끼워넣으니,
금속이 맞물려 들어가는 소리와 함께 버스 2층이 개방됩니다.
...
계단을 올라 버스의 2층으로 들어섭니다.
그 장소는 이상하게도 단촐한 방과 같은 형식을 하고 있었습니다.
곳곳에 자리하고 있는 차창에서 물기를 머금은 탁한 빛이 터져나와 내부를 은은히 비추고 있습니다.
내부에는 책상과 책장, 그리고 침대 하나가 놓여있네요.

깔끔하게 정돈되어있는 책상 위에는
그 흔한 필기도구도, 책도, 사용감도 그 무엇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 흔한 먼지조차 한터럭 쌓여있지 않네요.
말끔하다 못해 쓸쓸해 보이는 책상 한가운데,
반으로 접혀 있는 쪽지만을 한 장 발견합니다.

살펴본 쪽지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생과 사의 갈림길,
죽음이 머지 않은 영혼의 길을 인도하는 사자는
생전 그 사람이 가장 사랑했던 자의 얼굴로 나타나 여로를 안내한다.

책장에는 책이 한가득 꽂혀있지만,
그 어느 것도 미노가 읽을 수 없는 것들 뿐입니다.
검은 색의 책등만이 마치 밤하늘처럼 빼곡이 즐비합니다.
: 《자료조사》 or 《관찰》판정

Value: | 85/42/17 |
Rolled: | 98 |
Result: | Fail |
역시 내용이 조금 어려웠을까요.
아무것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꼭 병원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병실용 침대입니다.
다가서면 커튼이 반쯤 쳐져있습니다.
커튼 위로 핀이 꽂힌 명찰 하나가 매달려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명찰에는 '송미노 님'이라고 적혀있습니다.
...문득 당신은 뼈를 치고 사라지는 기시감에 휩싸입니다.
조금 급한 손길로 커튼을 완전히 걷어내자,
곧 드러나는 것은 쓸쓸하기 짝이 없는 병실의 매트리스 침대.
침대 주변으로 즐비한 온갖 의료 장치들…
그 사이에 푸른색 담요를 덮고 누워있는 사람은
입가에 산소마스크를 뒤집어 쓴 채 눈을 감고 있습니다.
그제야 미노는 형용할 수 없었던 기시감의 정체와 마주합니다.
송미노, 당신이잖아요.
병상에 누워 끊임없이 즐비한 갖가지 의료 기계들 틈 사이에서,
산소 호흡기를 뒤집어 쓴 채 실낱같은 생명을 부지하고 있는 사람은…
송미노, 바로 당신입니다.
: 《듣기》 판정

Value: | 70/35/14 |
Rolled: | 69 |
Result: | Success |
삐―.
문득 아주 가까운 자리에서 익숙한 기계음이 터져나옵니다.
: 《관찰》 판정

Value: | 85/42/17 |
Rolled: | 70 |
Result: | Success |
미노는 병상 옆에 자리하고있는 심전도기록장치를 발견하게됩니다.
기록장치의 모니터 위로,
마치 미약한 파도같은 미노의 심전도 곡선이 출력되어 흐르고 있습니다.
당장이라도 숨이 멎을 것만 같은, 연약하고도 미약한 곡선이요.
: 《아이디어》 판정

Value: | 50/25/10 |
Rolled: | 86 |
Result: | Fail |
믿을 수 없는 현실의 연속입니다.
아니, 이제 이건 현실이 아니겠지요.
이 버스는, 스스로가 수몰되어가는 버스.
'영원한 안식'으로 향하는 버스에 올라타 있는 것은 바로 송미노, 당신입니다.
…
…
어쩐지 몸이 강하게 흔들리는 것만 같은 느낌에 눈을 감았다 떠올리면,
흐릿하고 침침한 시야 너머로 희기만 한 천장이 들어옵니다.
삐. 삐. 삐.
벨이 터지는 소리, 장치에서 터져나오는 다급한 기계음 소리,
위급한 환자의 위치를 알리는 병원의 방송 소리,
급박한 발걸음 소리가 뭉개지고,
흰 가운을 입은 의사가 당신의 이름을 부르고…
…
그리고 미노는, 다시 눈을 감습니다.
...
...
쏴아아.
고요하고 적막하게 수몰하는 세상을 울리는 빗소리.
낙수하는 빗물은 봄의 끝물에 삶을 모두 피워내고 낙화하는 벚꽃을 닮았습니다.
부드럽게 머리칼을 쓸어주는 손길에 정신을 차리면 어느새 정류장입니다.
품에 안고 있는 국화꽃은,
이제 생기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처참히 시들어 있습니다.


귓가에 내려앉는 다정한 목소리.
현에게 기댄 채 잠들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또.
고개를 들어올리면 아주 자연스럽게도,
정류장의 상단에 자리하고있는 버스 도착 안내 전광판이 눈에 들어옵니다.
지금까지의 전광판과 다른 점이 있다면
조금의 노이즈도 끼어있지 않다는 것.
이제는 온전히 모든 글자들을 읽어낼 수 있다는 것.
전광판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인도자가 인도를 받을 자의 이름을 호명할 때, 마지막 버스가 도착합니다.
아, 그래요. 그랬던 겁니다.
누가 부르든 상관 없던 게 아니었던 겁니다.
내가 너의 이름을 부르든, 네가 나의 이름을 부르든,
달리 상관이 없던 게 아니었던 거예요.
미노는 지금까지 현이 각 정류장에서 자신의 이름을 호명했던 일을 떠올립니다.
그러고보면, 꼭 현이 자신의 이름을 부른 뒤에 버스가 도착하지 않았던가요.
그야 당연하잖아요.
저 메시지에 따르면… 인도자는, 유현.
인도를 받을 자는, 망자의 길에 들어선 자.
죽음의 여로에서 가장 먼저 버스에 올라타있던 자. 바로 송미노, 당신입니다.
...
그렇지만 왜일까요.
어찌된 일인지 현은 당신의 이름을 부르지 않습니다.
이제, 마지막일텐데. 어째서.


미노는 첫 번째 버스에서 조우한 직후,
지금껏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던 현의 표정을 마주합니다.
그는… 기뻐보입니다.
동시에 슬퍼보입니다.
한편으로 어딘지 홀가분해보이는 눈으로 당신을 봅니다.
현은 자리에서 일어나 펼친 우산을 미노에게로 기울입니다.
현의 어깨가 젖어듭니다.
그제야 그가 입고있는 옷차림이 눈에 들어옵니다.
까만, 정장이네요.
꼭, 세상이 말하는 인도자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우산을 미노에게로 기울인 채 처연히 떨어지는 비를 맞던 현은,
나지막이 입술을 엽니다.
눈물같은 목소리가 허공을 가릅니다.

그렇게 속삭인 현은 문득 미노에게로 손을 내밉니다.
사방은 어느새 컴컴해져있습니다.








미노는 현이 내민 손을 잡습니다.
빗길을 가르며,
두 사람은 천천히 반대편 정류장을 향해 이동합니다.
발끝을 적시는 빗물은 기실 뜨거운지도, 차가운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아요.
그 아무 것도 중요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야 당연하잖아요.
내가 지금 온 힘을 다해 집중해야할 존재는 그저 현, 단 한 사람 뿐인걸요.

트럭이랑 부딪히는 순간에, 나는 긴 생각을 할 수가 없었어.
너를 어떻게든 살리고 싶었는데. ..그때 나는 죽고, 너는 곧장 병원에 옮겨졌지만 혼수상태에 빠져있어. 그게.. 벌써 1년째야.


그래서 난, 네 영혼을 안전한 안식으로 이끌고 싶어서… 그래서.
나한테 너를 인도할 수 있는 힘을 달라고, 신적인 존재와 계약을 했어.
...우리가 타고 왔던 버스, 기억하지?

송미노: ..응..

정류장에서 한 번씩, 네 이름을 불렀던건… 너를 죽음으로 인도하기 위해서였어. (바닥을 잠시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려 마주본다.)
...하지만, 괜찮아. 이제 다 괜찮아.
이제 더이상 네 이름을 부를 필요가 없어.


정말… 정말 다행히도… 너를 다시 삶으로 돌려보낼 수 있게 됐어.
..지금까지 들고 있는 국화가… 바로 생명 그 자체니까.
그 꽃다발을 들고 버스에 오르면, 다시 원래의 삶으로 돌아갈 수 있어.
곧 이 정류장에 너를 다시 삶으로 돌려보낼 버스가 도착할 거야. (손에 힘을 꾹 준다.)

..너는.. 넌 괜찮아?

..비에 젖지 않게 조심해. 건강하게 돌아가야지.
현이 말을 끝마침과 동시에 두 사람은 건너편 정류장에 도착합니다.
현에게서 모든 진상을 듣게 된 미노는 숨이 막혀옵니다.
억만겁의 슬픔 탓일까요,
아니면…
그렇게 말하는 너의 표정이 그 어느 때 보다도 더 기뻐 보여서 였을까요.
: 《이성》 체크

Value: | 55/27/11 |
Rolled: | 88 |
Result: | Fail |
: 이성 수치 -1d3

rolling 1d3
()
2
2

(손가락을 깍지껴서 꼬옥 잡아준다.)
문득 현의 어깨 너머로 희미한 불빛이 들어오는 전광판이 보입니다.
전광판의 메시지는,
우리가 원래 앉아있던 반대편 정류장의 전광판 메시지와 그 내용이 상이합니다.
삶으로의 귀환.
삶으로 인도받을 자가 인도자의 이름을 부르면,
삶으로 향하는 생환 버스가 도착합니다.

...내 이름을 불러줄래? ..내 사랑.
이제는 반대입니다.
이제는 반대로 당신이 현의 이름을 불러야 합니다, 송미노.




(버스정류장에서 꺾은 국화꽃을 줄 수 있을까요?)
: (줄 수는 있습니다만...)


너라도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어. ..내 마지막 소원같은 거야.
...나중에, 아주 나중에. 다시 천천히 돌아와줘.

기다려줘..



나도, 많이 사랑했어.
현아.
당신은 떨리는 목소리로 그의 이름을 부릅니다.
...바람이 붑니다.
온전히 침체된 죽음의 여로 반대편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어깨가 젖어듭니다.
바람이 이렇게 세차게 불면, 우산도 소용 없는 법입니다.
그러니 지금 내 뺨을 타고 흐르는 것은 눈물이 아닌 빗물인 겁니다.
…
얼마 있지 않아 정류장 앞에 라이트를 켠 버스가 한 대 정차합니다.
버스의 번호는, 0214번.

조심해서 가.
버스의 출입구가 열리면,
미노는 흠뻑 젖은 다리에 힘을 실어 그 위에 승차합니다.
버스에 올라타면, 곧 기다렸다는 듯 버스의 문이 닫힙니다.
당신은 급하게 뒷좌석으로 내달립니다.
창문을 열고, 우산을 든 채 당신을 올려다보는 현과 두 눈을 마주합니다.

그렇게 속삭이는 현에게 무어라고 답을 건네기도 전에 버스는 움직입니다.
수몰되는 세계에서,
수몰될 듯 슬프기만 한 버스가 빗길을 가르고 내달리기 시작합니다.
이제는 미노를 제외한 그 누구도 존재하지 않는 버스 안.
이 주체 못할 슬픔을 어떻게 견뎌내라는 걸까요.
이제 옆자리에 더는 네가 없는데,
너 없는 삶 속에서 나는 억겁같은 하루를 견뎌내며 살아가야 할 텐데…
이 슬픔을 어떻게 씻어내야 한다는 말인가요.
넘쳐 흐르는 슬픔에 턱 끝에 맺힌 눈물을 훔쳐냅니다.
뺨 위로 꽃잎처럼 흩어지는 눈물을 닦아내고, 또 닦아냅니다.
입술 바깥으로 침잠되어있던 고통이 터집니다.
많이 보고싶을 거예요.
다시 만나기 전의 수많은 시간을 버텨내며 나는 아주 아주 많이,
당신이 보고 싶을 거예요.
...
눈물에 흠뻑 젖어든 소매는 하얗습니다.
어느새부턴가 환자복 차림입니다.
무거이 내려간 고개에,
문득 품에 안겨있던 국화 꽃잎 위로 시선이 떨어집니다.
까맣게 시들어있던 국화는 물기를 머금어 생생합니다. 다시 피어난 겁니다.
나의 삶을 향해 되돌아가는 이 버스 안에서 말이에요.
국화는, 붉습니다.
이제 더는 흰 국화가 아닌 붉은 국화예요. 송미노.
…
떠올랐나요?
붉은 국화의 꽃말은,
당신을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당신은 품 한가득 국화꽃다발을 끌어안습니다.
그 위에 호흡을 묻고 하염없이 눈물을 쏟아냅니다.
…
…
삐. 삐. 삐.
익숙하고도 적막한 빗소리,
그 틈 사이로 새어나오는 희미한 기계음에 눈꺼풀을 떠올립니다.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흰 천장. 소독약 냄새. 밝은 빛.
아, 바뀐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이 곳이 바로, 현이 인도해준 나의 목적지입니다.
놀란 간호사의 목소리, 커튼을 치고 급히 들어서는 의사의 얼굴.
난잡하게 흐드러지는 내 삶의 빛.
네가 없는 너의 기일.
내가 살아 돌아온 비내리는 밤의 병실.
...
눈가에 고여있는 뜨거운 물기 탓에 눈이 아픕니다.
가슴에 담기 벅차고, 감은 눈 아래 떠올리기 힘들고,
그 삶이 짧았기에 찬란했고 슬픈 이름이 있습니다.
안녕, 현아.
한 점 떨림 없이 애정이 담긴 목소리로 네 이름을 부르는 것.
END1. 그것이 내 사랑의 정의였다.
20190214
유현 로스트
송미노 생환
-
[수몰버스]
END.
'TR 로그 백업 > 현미'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90221]사막의 끝자락에 달무리가 걸릴 때 (0) | 2019.02.21 |
---|---|
[20190218]섹스하고 싶어! (0) | 2019.02.18 |
[20190212]창백한 체온 (0) | 2019.02.13 |
[20190207]이 꽃다발을 너에게 (0) | 2019.02.07 |
[20190131]스니트로닝 (0) | 2019.01.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