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228
KPC. 유현
PC. 송미노
[프시케의 우울]
-
-
미노는 잠에서 깨어나 눈을 뜹니다.
시큰거리는 눈가, 다소 뻐근한 몸.
조명이 눈꺼풀에 발갛게 끼쳐들어 아팠던 것 같습니다.
푹신한 침대에서 일어나면, 그곳은 익숙한 방입니다.

(눈을 떠서 둘러본다.)
언젠가, 이런 풍경을 본 기억이 있는데.
아직 정신이 덜 든 탓인지, 머릿속이 흐릿합니다.
...
아, 그래요. 생각났습니다.
이곳은 현의 방입니다.
이전에 그를 따라서 몇 번 놀러왔던 기억이 있습니다.
하지만 방금 전까지 분명 즐거운 데이트를 하고 있었을 텐데,
왜 여기서 눈을 떴을까.
데이트 전에 잠들어 꿈이라도 꾸었나 싶지만,
그러기에는 현이 즐겁게 웃고 있던 기억 등은 너무도 생생합니다.
: 《이성》 체크

기준치: | 60/30/12 |
굴림: | 32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 이성 수치 감소 없음
방의 모습은 익숙하기 그지 없습니다.
미노와의 다정한 모습이 담겨 있는 액자,
현이 기념일을 꼼꼼히 적어두던 탁상달력,
째깍째깍, 귀를 잔잔하게 울리는 시계까지.
낯익은 가구들, 낯익은 풍경.
특별할 것 없는 방안의 모습은, 어쩐지 미노에게마저 안정감을 주는 것 같습니다.
...
단 하나, 이 낯익은 풍경 속에 어색한 점이 하나 있다면…
방의 주인인 현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겠죠.
미노가 잠들고 있던 사이, 잠깐 밖에 외출이라도 하러 간 걸까요?
현이라면 그럴 리가 없는데. 이상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때, 미노의 근처에서 낯익은 목소리가 들립니다.
이 목소리를 잊었을 리가 없죠.
아무리 들어도 틀림없이 현의 그것입니다.
그러나 미노가 뒤를 돌아보거나 근처를 찾아도,
어째서인지 현의 모습은 보이지 않습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 《이성》 체크

기준치: | 60/30/12 |
굴림: | 79 |
판정결과: | 실패 |
...
: 이성 수치 -1d2

rolling 1d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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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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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아, 많이 놀랐구나. ..나도 어떻게 된건지 모르겠네.

어, 어디 있어 현아..?


어디..(두리번)

모습이 이렇게 되어버려서, 보여줄 수가 없네.

모습이 왜...?

왜 이렇게 됐는지 묻는다면.. 해줄 말이 없는걸.
피곤하니까.. 이 얘기는 하지 말자.

네가 그렇다면.. 알았어.


지금..투명인간같은거야 그럼..?



..거짓말 한다고 생각해?

그냥, 확인차..(우물우물)

나만큼 너도 당황스러울 테니까..
...음, 그래. 그보다, 몸은 좀 어때?






여튼 아니라면 다행이야.
.. 배고프진 않아?

배..고픈가봐..(쭈뼛..)

찬장에 간단히 먹을 거는 있으니까.. 그거라도 먹는건 어때?

넌 괜찮아?




미노는 방밖으로 걸음을 옮깁니다.
나오자마자 바로 보이는 거실의 풍경 또한 매우 익숙하게 느껴집니다.

먹고 싶은 만큼 다 먹어도 돼. ..전에 사온건데 맛있더라.

소파 맞은편에 놓인 간이 부엌으로 걸음을 옮깁니다.
찬장을 열어보면... 예쁜 쿠키 통 하나가 보입니다.
현이 말한 쿠키가 이것인가 보네요.

통을 집어올리자 잘그락 잘그락, 안에서 쿠키카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함께 영화나 TV를 보면서 먹어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많이 먹어, 미노야.

고마워~(쿠키통을 뽁 열어본다.)
초코칩이 곳곳에 박힌 쿠키부터, 버터, 코코넛 쿠키까지...
다양한 종류의 쿠키들이 한가득 쌓여있습니다.

(TV보면서 먹자..)(리모콘을 들어 TV를 켜 본다.)

..같이 이렇게 영화본지도 오래된 것 같네.

영화 보고싶은거 있어..?

뭐가 좋지.. 무서운거라도 볼까? (작은 목소리로 장난치듯 넌지시 묻는다.)

네, 네가 좋다면야..모,못볼건 없지..
나난 볼 수 있어!(안물어봄)

농담이야. 다른 거 보자.
쿠키 먹으면서 볼 만한 영화는 아니지.

그렇겠지..?그럼..무난한거 보자.(쿠키를 하나 집어 입에 와삭, 문다.)
(리모컨을 들어 적당히 추천작에 있는 영화 하나를 골라 튼다.)


잠시 짧은 광고에 이어서 영화가 흘러 나옵니다.
가볍게 보기 좋은 로맨스영화 같습니다.
현과 이렇게 오붓하게 시간을 보내는 것이, 꽤나 오랜만인 것 처럼 느껴집니다.
...
영화를 반정도 보았을까,
영화에서 흘러나온 소리인지, 아니면 옆에서 들려오는 소리인지.
바닥에 무언가 툭,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는 것도 같습니다.



미노는 바닥에 떨어진 것을 내려다봅니다.
이건...
아니, 이게 대체 뭘까요?
붉은 빛깔의 덩어리...
알 수 없는 무언가의 살점 같습니다.
: 《이성》 체크

기준치: | 59/29/11 |
굴림: | 25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 이성 수치 감소 없음



떨어진 것을 주워들자, 기분나쁜 촉감이 손끝을 타고 올라옵니다.
확실하게 알 수 있습니다. 무언가의 고깃 덩어리라는 것을.


..아아, 미안.
전에 요리했을 때 꺼내뒀던게 거기까지 굴러갔나봐.
싱크대에 대충 버려줄래?



(고깃덩이를 들고 부엌으로 향한다.)
미노는 부엌으로 향합니다.
곧장 손에 잡혀있던 기분나쁜 것을 싱크대 안에 넣고 손을 닦아냅니다.
한창 기분좋게 영화를 보고 있었는데, 어쩐지 찜찜함만 남아있습니다.








(다시 오독오독 쿠키를 씹어먹는다.)

쿠키는 입에 맞아?

완전 맛있는데..어디서 샀어? 다음에도 또 먹고싶네..

..다음에, 같이 가보자. 미노 네가 좋아하는 디저트도 많아.



(쿠키를 우물거리며 귀기울여 듣는다.)
응, 그것도 같이 먹자.


(꼼질..)얼굴만 보이면 안아줬을텐데..


(말을 하면서도 열심히 쿠키를 입에 집어넣는다.)
그렇게 한참을 떠들며 영화를 보고 있으니, 곧 엔딩이 다가옵니다.
인상깊게 본 것은 아니었지만, 시간을 때울정도로는 나쁘지 않은 영화 같습니다.



어, 음..조,좀 남겨줄까..?
(내 쿠키가 아닌데 말이 이렇게..)

아. 아냐아냐, 다 먹어.

워원래 이렇게 많이 먹진 않은데 입에 맞아서..(허둥)





영화도 다 봤는데, 이제 뭐 할까?

아, 역시 좀 어려운가..(끙)

당분간은 집에 같이 있자.

음~(꿈뻑)네가 입맛이 좀 있었으면 내가 간만에 요리솜씨좀 발휘해봤을텐데!



얘기라도 듣고 싶어서.


그때는 조금 나아질 지도 모르니까.

올때 재료도 사올게!





..목소리 뿐이라서, 같이 있기 싫어?

어, 그러니까..내가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면서..(웅얼..)

그럼 계속 같이 있자.


영화도 다 봤고.. 오늘은 들어가서 일찍 쉴까?

(몸을 일으켜 총총, 다시 침실로 향한다.)

...
시간이 벌써 이렇게나 지난 걸까요.
방 안으로 들어오자 더욱 어두운 분위기가 내려 앉아 있습니다.
미노는 침대에 몸을 눕힙니다.
현의 일로 조금 뒤숭숭한 것은 사실이었지만, 아무렴 좋아요.
이렇게라도 함께 있을 수 있다면 괜찮은거겠죠.
피곤한 눈을 감고, 평소보다 이른 잠자리에 듭니다.
좋은 꿈만 꾸는 밤이 되었으면.
...
...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고,
고요한 적막만이 감돌던 새벽 즈음,
미노는 수면 중 무언가가 스치고 지나가는 느낌을 받습니다.
: 《아이디어》 판정

기준치: | 50/25/10 |
굴림: | 1 |
판정결과: | 대성공 |
무르고 거칠거칠하며 처음 느껴보는 듯한, 몹시 이상한 감촉이었습니다.
: 《듣기》 판정

기준치: | 70/35/14 |
굴림: | 78 |
판정결과: | 실패 |
…
…
무겁게 눌러 앉아 있던 눈꺼풀을 들어올립니다.
벌써 아침이네요.
부스스한 정신을 가다듬으며 주위를 둘러보면,
어째서인지 전날과는 묘하게 다른 분위기가 느껴집니다.
크게 눈에 띄는 건 [책상]과 [달력]정도입니다.

(몸을 일으켜 책상을 살펴본다.)
도서와 필기도구 같은 것이 단정히 정리되어 있습니다.
자세히 살펴보면 [작은 메모]를 한 장 발견할 수 있습니다.

[ 너는 나를 어디까지 용서할 수 있을까? ]
그 짧은 문장을 끝으로, 다른 내용은 적혀 있지 않습니다.

으음...(달력을 살펴본다.)
달력에 표시되어 있는 날짜가 신경이 쓰입니다.
: 《아이디어》 판정

기준치: | 50/25/10 |
굴림: | 25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유독 익숙한 날짜입니다.
맞아요, 이 날은... 미노와의 약속에 현이 늦었던 날이었죠.
많이 늦은 것에 미안하다며 사과를 하던 그의 모습이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
집 안을 적당히 둘러 보고 있을 때쯤,
고요했던 실내에서 인기척이 들려옵니다.
터벅터벅.
작은 발소리도 함께였습니다.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고개를 들자, 곧 익숙한 얼굴이 등장합니다.
커다란 체격에 노란 눈동자, 검은 머리.
당신의 곁에 항상 자리를 잡고 수많은 시간을 함께 하던 사람,
현입니다.
...어떻게 된 일일까요?
갑자기 원래대로 돌아온 걸까, 아니면 현이 두명인걸까.
미노는 두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눈 앞의 현의 이름을 부르자,
마치 실존하지 않는 것처럼, 현은 미노를 통과해 지나칩니다.
신기루라는 것이 꼭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일지도 모르겠습니다.
: 《이성》 체크

기준치: | 59/29/11 |
굴림: | 98 |
판정결과: | 실패 |
: 이성 수치 -1



저건, ..아니, 여기는 내 기억속이야.
그러니까 얘기해봤자 듣지 못해.




..이 기억은, 미노 네가 보지 않기를 바랐는데.

미노와 현의 대화가 오가는 사이,
현이 말하는 '기억 속의 유현' 은 분주히 집에서 준비를 끝마치고 바깥으로 나섭니다.
데이트 약속을 기다리는 듯 설레어하는 모습도 보이고,
미노와 통화를 하는 모습도 보입니다.
...
미노와 진짜 현은 굳이 걸음을 떼지 않아도,
어쩐지 기억 속의 현을 쫓아가고 있습니다.
마치 입체 영화를 체험하는 것처럼, 주변의 풍경이 제 멋대로 뒤바뀝니다.
얼마나 따라갔을까.
기억 속의 현은 한동안 걸음을 옮기다, 문득 한 골목에서 걸음을 멈춥니다.
현의 시선을 따라 골목을 들여다보면,
골목에서는 큰 싸움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한 사람이 피떡이 되도록 밟히고 맞고 있습니다.
소위 말하는 ‘불량배’ 혹은 깡패에게.
돈이라도 빌려놓고 갚지 않은 걸까요?
어쨌든, 그는 몹시 위험한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이마에서는 피가 잔뜩 흘러내리고,
한 쪽 눈은 멍이 들어 퉁퉁 부은 것도 같습니다.
얼마나 맞은 건지 앞니도 부러져 피 떡진 바닥에 떨어져 있습니다.
피멍으로 얼룩진 어깨가 심상치 않아 보이고, 팔도 부러진 것처럼 보입니다.
당장 경찰에 신고하지 않는다면, 아무래도 큰일이 날 상태입니다.
한 눈에 봐도 그는 위험해 보였으니까요.
죽을 위기인 그는 삶의 빛을 발견한 듯,
골목 입구에 서 있는 ‘기억 속의 현’에게 외칩니다.
: 살려줘! 부탁이야, 죽기 싫어... 사, 살려줘. 제발.. 제발 신고해줘...
‘기억 속의 현’쪽으로 핏물 범벅이 된 손을 뻗는 그의 목소리는 처절하게 골목을 뒤흔듭니다.
….하지만,
그는 조금 뚱하게,
혹은 혐오스러운 것을 본 얼굴로 그를 쳐다보기만 합니다.

...
그 때쯤,
어디선가 벨소리가 울립니다.
‘기억 속 현’의 핸드폰입니다.
화면 속에 떠오른 이름에 무척이나 기분이 좋아진듯,
현은 화사한 얼굴로 전화를 받습니다.

나 금방 도착하니까 좀 늦어도 돼. 그래그래, 천천히 와.
해사한 웃음을 짓던 현은 그 광경을 못 본 체를 하며,
살려달라 외치는 사람을 무시한 채 골목을 스쳐갑니다.
오랜만의 데이트를 방해받기 싫었다는 것처럼.
당신이 알던 현에게, 이런 모습이 있었던가요.
: 《이성》 체크

기준치: | 58/29/11 |
굴림: | 41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 이성 수치 감소 없음
터벅, 터벅.
지나쳐 걸어가는 현의 뒤로...
빠각, 하고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리며 기억이 끝납니다.
...영상이 끝나 듯이, 그렇게 세계가 정지합니다.
…
…
그다지 바뀐 것은 없지만,
아까의 골목으로 향하면 골목의 바닥에는 사람은 없고 차디찬 핏자국만이 남아 있습니다.

일단 집으로 돌아가자, 미노야.


...
...
깜빡깜빡.
눈을 깜빡일 때마다 주위가 점차 어둠으로 잠깁니다.
골목의 풍경은 조금씩 사라지고,
정신을 차리고 보면 다시 현의 집에 되돌아와 있습니다.





..내가 싫어진건 아니지?

나, 나라도..어, 그러니까..
신고..못할 수도 있고...

이럴까봐.. 네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던 건데..


..일단, 좀 앉아서 쉴까?


..이리와, 미노야. (옆자리를 톡톡 두드리며 소리를 내본다.)







..나도 안아주고 싶은데.

(잠시 말없이 쳐다보기만 하더니 비척비척 먼저 몸을 일으킨다. 덕분에 제 쪽으로 조금 내려앉아있던 소파가 다시 미노를 향해 기울었다.)
일찍 들어가서 쉴게. ..조금 피곤해서.






...
그다지 늦은 시간은 아니었지만, 일찍 잠자리에 눕습니다.
여러모로 충격적인 일들에 정신이 없습니다.
자고 일어나면, 조금은 기분이 괜찮아질지도 모릅니다.
미노는 조용해진 현을 따라서 잠을 청하며 눈을 감습니다.
꿈이라도 편안한 밤이 되기를.
...
...
: 《듣기》 판정

기준치: | 70/35/14 |
굴림: | 67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콰르르릉….
...
수면 중에 어렴풋, 천둥과도 같은 소리가 들려옵니다.
…
…
눈을 뜨면, 어느덧 아침입니다.
기분탓일까요?
어쩐지 이전보다 확실히 기운을 되찾은 느낌입니다.

몽롱한 눈을 비비며, 주위를 둘러봅니다.
묘하게 벽에 걸려 있는 [달력]과 [책상], 집안 구석구석이 눈에 띕니다.

달력이 가리키고 있는 날짜가 어제와는 또 다른 것 같습니다.
익숙한 날짜에 곰곰이 생각에 잠기던 미노는, 곧 떠올릴 수 있습니다.
이 날은… 현이 갑작스럽게 약속을 취소했던 날입니다.
데이트에 잔뜩 들떠 있었는데, 갑작스러운 통보에 조금 시무룩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그런 일도 있었지..)(현이 그럴수도 있지!)
(책상을 살펴본다.)
책상 위에는 어제와 같이 도서와 필기도구 같은 것이 단정히 정리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한 가운데,
알 수 없는 노트의 [찢어진 페이지] 한 장이 놓여있습니다.

종이 위에는 악필로 휘갈겨진 글자들이 가득 남아있습니다.
알아보기는 조금 어렵지만, 이것이 한글이라는 것은 알아챌 수 있습니다.
: 《모국어》 판정

기준치: | 60/30/12 |
굴림: | 31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종이의 뒷면에는 똑바로 서 있는 모래시계가 그려져 있습니다.
파란 모래가 아래로 떨어져, 윗 부분의 모래는 몹시 조금 남아 있는 그림입니다.

미노는 다시 눈을 들어 주위를 둘러봅니다.
첫 날 지냈던 곳과는 집 안의 분위기가 상당히 다릅니다.
눈을 의심할 정도로, 곳곳이 공간의 뒤틀림으로 일그러져 있습니다.
책장의 책은 무너지고, 의자는 허름하게 부숴진 채 바닥에 나뒹굽니다.
집안의 풍경은 형편없기 짝이 없으며 을씨년스러운 분위기가 감돕니다.
어쩐지... 스산하다는 기분이 들 정도입니다.



....
잘잤어..?

헤헤..너도?

응, ..덕분에.
현의 목소리가 전날보다 더 약하게 들려옵니다.
금방 쓰러지더라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창백하고 미약한 음성입니다.
: 《아이디어》 판정

기준치: | 50/25/10 |
굴림: | 77 |
판정결과: | 실패 |
..어, 현아.. 어디 아파..?

..아.
아니, 괜찮아..


…
…
그렇게 잠시 대화를 나누고 있을 무렵,
어제처럼 인기척이 느껴진 후에, 곧 ‘기억속의 현’이 나타납니다.

오늘은 유독 피곤한 걸까요.
좋지 않은 얼굴로 전화를 받다가 곧 표정이 굳어집니다.
나쁜 소식이라도 들은 거겠지요.
전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명백하게 미노가 아닌 것 같습니다.
...
한참의 통화 후,
기억 속의 현은 전화를 끝내고 상당히 딱딱한 얼굴로 바깥으로 향합니다.
그러다 무언가를 잊은 듯 미노에게 전화를 걸고,
약속을 취소해도 괜찮겠냐고 양해를 구합니다.
어디서 본 듯한 상황입니다.
: 《심리학》 판정

기준치: | 25/12/5 |
굴림: | 2 |
판정결과: | 극단적 성공 |
그 찰나의 순간동안 미노는 알아챌 수 있습니다.
그의 표정에 살의가 담겨있다는 것을.
…
터벅, 터벅.
공간이 현의 걸음에 맞추어 천천히 변화합니다.
정신을 차려보면, 그곳은 도시의 바깥입니다.
볕은 따갑고, 풍경에 바뀐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 사이를 걸어가는 기억 속의 현은 어쩐지 이질적입니다.
명백한 어떤 의도를 띠고 있었기 때문일까요.

...이것만은, 정말로 보여주고 싶지 않았어.


미노야.


..네 사랑이라고 여겨 줄까.

미노의 짧은 대답과 함께 주변을 둘러보면,
어느 새 옥상 위에 올라와 있습니다.
저 멀리, ‘기억 속의 현’과 알 수 없는 사람이 서 있는 것이 보입니다.
멀리서 바람에 실리듯 대화가 들려옵니다.
?: 여전히 생각 없는 거야?

?: 네가 전에 말한 애. 오래 만날 생각도 없다며.

?: 그러지 말고 한 번만 생각해봐. 안 돼?

?: 그럼, 어쩔 수 없지.
멀리서 인영이 무언가를 꺼냅니다.
거리 탓에 처음에는 알아볼 수 없었지만, 점차 시점이 가까워지면서 형태가 명확해집니다.
인영의 손에 든 것은 사진입니다.
미노와 현의 모습이 잔뜩 담겨 있습니다.
...낯선 이가, 히죽 웃는 것도 같았습니다.
한 장, 두 장.
그렇게 몇 장이 넘어가면, 미노의 사진이 보입니다.
씻고, 자고, 먹고, 하는… 지극히 개인적인 풍경이 가득히 담겨 있습니다.
...도대체 언제 찍힌 걸까요.
욱 치미는 서늘함과 공포스러움이 있습니다.
: 《이성》 체크

기준치: | 58/29/11 |
굴림: | 85 |
판정결과: | 실패 |
: 이성 수치 -1
낯선 인영은, 아무래도 두 사람의 스토커였던 모양입니다.
그녀는 뿌듯하다는 양 웃으며 말을 이었습니다.
?: 예쁘지?
봐봐, 송미노야.
넌 내가 이거 찍을 때 뭘 했어?
아무것도 안 했지? 아니, 아무것도 못 한 거구나.. 그렇겠지.
네가 허락 안 해주면 말야, 나는 어쩔 수 없이 얠 죽일 거야.
그럼 네가 날 봐주겠지?
기억 속 현의 얼굴이 일그러집니다.
어이없다는 듯 기 찬 반응을 뱉는 걸로 봐서는,
아마도 오래도록 이런 협박에 시달려온 것 같습니다.
그녀는 몹시 즐거운듯, 입꼬리를 올려 웃기 시작합니다.
?: 이렇게 가까이서 사진도 찍을 수 있는데 내가 못 할 것 같아?
바람에 두 사람의 옷자락이 팔락거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기억 속의 현은, 한참 동안이나 침묵하고 있었습니다.
침묵, 또 침묵.
조용히 굳은 채로 서 있던 현은 곧 무언가 생각났다는 것처럼,
그녀의 곁으로 한 걸음 다가섰습니다.
뜻밖의 반응에 당황한 듯, 여자는 한 걸음 뒤로 물러섭니다.
여자의 뒤는 낮은 난간이고, 그 아래에는 까마득히 도로가 펼쳐져 있습니다.
자칫 잘못 헛디뎠다간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아슬아슬 발을 걸친 상황입니다.

..비장의 카드랍시고 꺼냈을텐데, 안타깝네.
미안하지만... 내가 널 볼 일은 없어.
?: 뭐, 뭐하는 거야…?
기억 속의 현은 그렇게 이야기합니다.
건물의 검은 그림자에 가려 그의 얼굴은 보이지 않습니다.
익숙한 목소리가 더 이어집니다.

...아니, 넌 손가락 하나도 대지 못해.
순간순간,
모든 장면들이 느리게 펼쳐집니다.
스토커를 밀치고,
그녀의 몸이 난간 위로 천천히 넘어가고,
이내 끔찍하게 추락하여 퍽, 소리가 나는 것만이 미노의 귀에 맺힐 뿐입니다.
뒤로 작게 들려오는 소리가 있습니다.

당신이 알고 있던 현이, 지금 사람을 죽인 건가요?
: 《이성》 체크

기준치: | 57/28/11 |
굴림: | 77 |
판정결과: | 실패 |
: 이성 수치 -1d2

rolling 1d2
()
2
2
난간 아래를 내려다보면, 그곳에는 끔찍하게 부서진 사람의 시체가 있습니다.
기억 속의 현은 언제 그곳에 있었냐는 것처럼 순식간에 사라지고,
거기에서 기억은 끝이 납니다.
…
…
무엇을 더 할 새도 없이, 세상은 다시 새까맣게 물이 듭니다.
다시 주위를 둘러보면,
이제는 익숙하게 느껴질 법한, 현의 집으로 돌아와 있습니다.
미노의 곁에서, 바람 빠진 허탈한 웃음소리가 들리는 것도 같았습니다.





..괜찮아..?

스토커, 였잖아. ..그렇지?



..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

이해할 수 있어..(떨어진 고개 밑으로 작게 주먹을 주억인다.)




많이 피곤한 걸까요.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걸까요.
그렇게 말하는 현의 목소리는 전보다 더 끊어질듯 작게 들려옵니다.
문득, 미노의 머릿속에 무엇인가 떠오를 듯 합니다.
: 《아이디어》 판정

기준치: | 50/25/10 |
굴림: | 43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아까 보았던 모래시계 종이에서 ‘생명력’이라는 단어가 유독 신경쓰입니다.
...
...
무언가를 더 할 새도 없이, 또 여전한 밤이 찾아옵니다.
침대에 몸을 눕히고 또 함께 눈을 붙입니다.
...
...
얼마나 시간이 지나갔을까.ㄴ
쿵, 쿵…
와르르…
무엇인가 크게 부서져 내리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주의 깊게 듣지 않아도, 분명히 알아챌 수 있을 만큼 아주 선명한 소리입니다.
: 《듣기》 판정

기준치: | 70/35/14 |
굴림: | 49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잠결에 나지막이 또 다른 소리가 뒤섞여 들려옵니다.

살고 싶어.. ..
...
중얼거림을 뒤로 하고,
쿠구궁-
공간이 큰 소리와 함께 변화합니다.
잠에서 깨어버린 미노는 투명한 현과 같이 그것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습니다.
서서히, 아주 느리게 공간이 변화를 멈추기 시작합니다.
어지러운 정신을 가다듬고 주위를 둘러봅니다.
여긴… 그래요, 당신이 알고 있는 곳입니다.
처음 깨어나기 전 현과 미노가 데이트를 하던, 바로 그 거리입니다.
…
...아,
이 장면은 본 적이 있습니다.
우리가 행복해 마지않던 그 때,
마지막으로 미노의 기억이 끊겼을 때였죠.
디저트를 사 오는 현, 그러다 달려오는 차를 보지 못한 미노.
그리고 뛰어 들어 미노를 구하려다 같이 치여 나뒹구는 현의 모습이 보입니다.
… 시야가 흐릿하다가 두 사람에게서 확 멀어집니다.
...
...
시점이 바뀌자, 그곳은 끝없는 어둠뿐입니다.
빛도 한 점 없는 그 어둠 속을, 현은 한도 끝도 없이 걷고 있습니다.
그의 등에는 무언가 업혀 있습니다.
무엇인지 물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눈뜨지 못한 채 잠들어 있는 송미노, 당신이니까요.
현은 때때로 잠든 것처럼 의식없는 미노에게 말을 겁니다.
돌아오지 않을 물음을 계속 더해가면서.

괜찮아? ..괜찮구나.
다행이다... 응,응. 미안해. 더 자, 미노야.
현은 다시 미노를 업고 끝없는 어둠 속을 빙글빙글 돌기만 합니다.
행선지가 없는 발걸음만이 계속, 또 계속해서 이어집니다.
얼핏 턱끝에서 눈물이 비친 것도 같습니다.
…
그 때 한 남자가 눈 앞에 나타납니다.
미노가 모르는 사람입니다.
“불쌍하게도, 곧 죽을 놈을 데리고 다니는구나.”
“까딱하면 기억이 날아갈 인간이 말이야.”
현의 눈물젖은 얼굴이 돌아갑니다.
놀란 듯한 얼굴이었습니다.
그는 현에게 이 곳은 두 사람이 살던 곳과는 다른 이세계라는 것을 알려주며, 한 가지 제안을 합니다.
죽을 운명인 미노와 기억을 잃을 운명인 현,
이 둘을 이 곳에서만은 온전하게 유지시켜주는 조건이었죠.
다만 그 대가는 간단하지 않았습니다.
현이 잠시 원래 세계로 돌아가서 자신을 강림시키라는 제안이었으니까요.
또한 이 공간에서 그의 생기가 모이고 모이면 미노를 살려낼 수도 있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그러면 두 사람은 꽤 행복하지 않겠느냐고도 말합니다.
그가 손을 휘두르면, 그 자리에는 작은 공간이 생겨 있습니다.
...익숙한 그 장소, 현의 집입니다.
그는 현에게 이야기합니다.
“이 세계를 네 정신의 한 부분과 연결시켜 두었으니 강림을 준비할 동안은 미치지 말라고.”
현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미노에게 보였습니다.
간절함이 보이는 얼굴에서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습니다.
이 공간에서라면, 분명 행복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걸까요...
결정을 내린 이후의 일이 미노의 앞으로 빠르게 흘러갑니다.
…
약속한대로 현은 신의 강림을 준비합니다.
원래 세계의 병원에서 깨어난 뒤,
이해할 수 없는 ‘그 존재’를 세계에 부르는 것까지.
미노의 눈에 현의 그간의 행적이 온전히 드러납니다.
…
…
...세상이 빠르게 파괴되어갑니다.
아름답던 하늘은 이미 빛을 바랜지 오래입니다.
당신이 사랑했던 사람의 손으로,
당신이 사랑했던 모든 것들이 부서져 내립니다.
비명 소리와 부서지는 소리만이 도시에 가득 울립니다.
멀리 TV에서 도시의 마비 소식을 알리고 있습니다.
지직, 지직…
신호마저 미약한듯 노이즈가 낀 TV화면은 얼마 지나지 않아 빠르게 전환됩니다.
△△△양(18)
○○○씨(28)
□□□씨(14)
…….
…
미노는 굳이 깊은 생각을 하지 않아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이 사망자 명단이라는 것을.
채 깊이 읽기도 전에 수많은 사람의 이름이 스쳐 지나갑니다.
그렇게 허무한 감상에 젖어 TV화면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익숙한 이름들이 하나 둘, 떠오르기 시작합니다.
미노의 친구들과 가족들…
어쩌면 지금 같은 순간에 가장 듣고 싶지 않았을 그 이름들.
소중한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천천히 소거 되어 갑니다.
…
TV 앞에는 현이 서 있습니다.
그는 방송을 보며 실성한 듯 몇 번 웃다가,
그 자리에서 빨려나가듯 순식간에 사라졌습니다.
…
깜빡깜빡.
또 다시 눈을 깜빡이면, 어느새 다시 익숙한 방입니다.
미노는 현의 집에 있는 침대에 오래도록 누워 있습니다.
이상한 남자의 모습은 그 뒤로 한 번도 나타난 적이 없고,
현은 그런 미노의 곁에서 매일 말을 걸거나, 씻겨 주거나, 물을 떠 오거나,
애정어린 몸짓으로 이마에 입을 맞추기도 합니다.
간혹, 애틋하게 머리를 쓸어주기도 했습니다. 미약하게나마 말도 건넵니다.

그러나, 장면이 바뀔수록 이상해지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현의 외모.
처음엔 이마에 혹이 생기는가 싶더니, 다음 장면에는 손가락이 메말라 가고,
그 다음 장면에서는 골격이 움푹 튀어나오고,
이어서 얼굴의 살점이 흐물흐물 녹아 떨어집니다.
마지막 즈음에는 형체도 알 수 없는 것으로 변해갑니다.. 꼭 괴물처럼.
현은 누워 있는 미노를 보며 울다가, 웃다가, 스스로의 모습을 확인합니다.
분명 놀라겠지. 그런 말을 뱉었던 것도 같습니다.
그러다 어딘가에서 찾아낸 두루마리에서 무언가를 읊습니다.
동시에, 그의 모습이 투명해집니다.
...
이윽고 마지막 장면이 찾아듭니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난 것 같습니다.
…
…
미노는 잠에서 깨어나 눈을 뜹니다.
시큰거리는 눈가, 다소 뻐근한 몸.
조명이 눈꺼풀에 발갛게 끼쳐들어 아팠던 것 같습니다.
푹신한 침대에서 일어나면, 그곳은 익숙한 방입니다.
언젠가, 이런 풍경을 본 기억이 있는데.
아직 정신이 덜 든 탓인지, 머릿속이 흐릿합니다.
...
아, 그래요. 생각났습니다.
이곳은 현의 방입니다.
이전에 그를 따라서 몇 번 놀러왔던 기억이 있습니다.
하지만 방금 전까지 분명 즐거운 데이트를 하고 있었을 텐데,
왜 여기서 눈을 떴을까.
...
...
현이 가장 보여주기 싫던 기억은, 이것이었을까요.
: 《이성》 체크

기준치: | 55/27/11 |
굴림: | 84 |
판정결과: | 실패 |
: 이성 수치 -1d5

rolling 1d5
()
4
4
미노의 뒤에서 형편없이 흔들리는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돌아보지 말아줘.
..부탁이니까..


....미안해, 미노야..
네가 일어나서, 다시 웃어주는 걸 보고 싶었어..
....
난, 미노.. 네가 웃을 때 제일 행복했으니까..
...미안해..

혀, 현이 너는....?




아프지..않겠다고 했잖아...
튼튼하다고...

...
.. ...너만 행복하다면, 아프지 않아.
쿵, 쿵.
문득, 요란한 소리에 주위를 둘러보면,
세상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미노와 현이 서 있는 그 하늘이, 천장이,
조각조각 파편이 되어 두 사람의 근처로 후두둑 떨어져 내립니다.
파편이 쉴새없이 떨어지기 시작합니다.
그것은 꼭 빗물 같기도 했고, 누군가가 흘리는 눈물 같기도 했습니다.
미노는 그 광경을 가만히 바라볼 수밖에 없습니다.
한 세상이 멸망해가는 모습은 기묘하고 또 서글픕니다.
세계의 날카로운 조각들이 자꾸만 미노의 곁으로 떨어집니다.

이제, 정말 끝이네...
...걱정, 하지 마. 미노야.
....여기가 무너진다는 건.. 네가.. 살아서 나갈 수 있다는 거니까. ..

같이..나갈 수 있어...?
미노는 그렇게 물으며, 목소리가 들리는 곳을 향해 고개를 돌립니다.
그리고 제 앞에 있는 것을,
그것을 바라보는 자신의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현의 목소리를 내는 그것은, 사람이라고 부르는 것이 우습게 느껴질 정도입니다.
마치 괴물과도 같은 모습의 현이, 당신의 앞에 서있습니다.
그런 그의 모습은, 차츰 투명하게 희석되기 시작합니다.

건강해 보여서, 다행이네..

나만, 나만 아니었어도...
네가. ...

사과할 사람은 나겠지...
..끝까지, 너에게 소중한 사람으로 남고 싶었는데....
...추악하고 더러운 사람으로, ..그렇게 기억되고 싶진 않았어...

너는, 내게.. 가장 소중한 사람이니까..



이렇게 형편없는 몰골인데도..
..그래도, 아직 네게... 가장 소중한 사람이야?


..그럼, 나를 용서해 줄 수 있어..?



나는.. 네 덕에 여기 서 있는거잖아.
나는.. 나 때문에 네가 그렇게 된게 가장 슬퍼..

..괜찮아. ..나는 지금 누구보다 행복하니까...
..사랑해, 미노야.

: 《아이디어》 판정

기준치: | 50/25/10 |
굴림: | 32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미노는 떠올립니다.
지금까지 현의 생기가 자신에게 흘러들었던 것 아닐까.
그렇다면 자신에게서 생기가 빠져나갈 방법을 찾는다면…
내가 아닌 현이 원래 세계로 돌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
곧 주변을 둘러보던 미노는, 상처내기에 알맞은 유리 파편을 발견합니다.

..현아..





..미노야?

가능하다면..한번만 더 너를 꼭 안아주고 싶었는데..




당신은 도저히 그를 이대로 무력하게 보낼 수가 없습니다.
그 대신 자신이 살아난다니, 납득할 수 없습니다.
원래라면 살아갈 것은 현이였으니까요.
그런데 당신이 왜 그 죄악을 감당하고 홀로 져야하는지.
미노는 현을 살려야만 했습니다.
현의 모든 노력이 물거품처럼 흩어진대도, 그를 죽일 수는 없었습니다.
그가 아무리 추악한 죄인이라 하더라도 말이죠.
실로 참혹한 낭만이었습니다.
프시케가 에로스를 처음 사랑이라 맞았을 때 이러한 기분이었을까요.
당신은 현이 괴물임을 알면서도 그를 용서하기로 합니다.
미노의 손이 현의 거칠고 무른 손에 꽉 잡힙니다.
물컹하고 끈적거리는 감촉에도 기분은 나쁘지 않았습니다.
온통 흔들리며 무너지던 세계가 당신의 상처로 인해 뚝 멎습니다.
여태껏 흘러왔던 생기가 도로 빠져나가는 기분입니다.
미노는 차츰 정신이 희미해집니다.
여지껏 활기 넘쳤던 일이 다 꿈인 것처럼 숨이 가쁩니다.
현과 마지막 인사를 합니다.
세계는 무너진 채로 멎어버리고, 미노는 눈을 감습니다.
그와 동시에 의식이 떨어집니다.
…
…
말간 햇살에 눈을 떠 보면, 그곳은 병실이었습니다.
곁에는 소중하고 또 아픈 당신의 괴물, 당신의 사람이 누워 있습니다.
잠에 든 모양인지, 숨소리가 규칙적입니다.
그러다 미노의 시선을 느낀 것일까요?
무거운 눈을 뜹니다.
마주한 눈은 오랜 어둠처럼 캄캄합니다.
오랜 이와 함께하는 병실의 햇살은 눈이 부실만큼 밝고, 또 아릿했습니다.
비로소 돌아온 것일까요. 그런 것 같습니다.
…
어떤 신의 자비가 두 사람을 돌려 놓았는지도 모릅니다.
두 사람의 병실 협탁 위에는,
정확히 모래가 절반으로 나뉘어진 모래시계가 가로로 멈추어진 채 놓여 있습니다.
END.3 프시케의 참혹한 낭만
20190228
유현 생환
송미노 생환
-
[프시케의 우울]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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